Branding, UI Design history / 2025-05-22 / by 천진우

불을 머리에 올린 인간: 신성을 쓰고 싶었던 인간의 욕망 - 2장

2장. 상징은 농업보다 먼저 왔다

인류는 언제부터 신을 믿기 시작했을까?

아니, 질문을 바꾸자. 인류는 언제부터 “신처럼 보이고자” 했을까?

우리는 흔히 농업의 시작을 문명의 시작으로 여긴다. 정착, 곡물 저장, 잉여의 발생, 위계의 형성. 하지만 터키 남동부의 괴베클리 테페 유적은 이런 상식을 뒤흔든다. 농경이 시작되기 전, 사냥과 채집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사람들이 거대한 석조 기둥을 세우고, 상형문자도 없는 시대에 신비로운 의례 공간을 만들었다는 사실. 이는 생존 이전에 이미 상징과 의례가 존재했다는 강력한 증거다.

괴베클리 테페는 기원전 약 9600년경에 지어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의례용 건축물로, T자형 석주들이 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 거대한 석주들에는 동물과 추상적인 문양들이 새겨져 있으며, 일부 석주에는 팔과 손 같은 인체 요소가 조각되어 있어 인체를 형상화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건축이 농업도 시작되기 전, 이동 생활을 하던 집단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은 고고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사람들은 이 구조물이 생존을 위한 시설이 아닌, 의례와 상징을 위한 공간이라는 데 의견을 모은다. 다시 말해, 인류는 먹고살기 위해 정착한 것이 아니라, 신을 만나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는 가설이 힘을 얻는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먹고 자는 법보다 먼저, 무언가를 두려워했고, 숭배했고, 표현했다. 그리고 그 표현의 핵심에는 늘 형태가 있었다. 무언가를 세우고, 조각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몸을 꾸미는 것. 장신구, 문신, 머리 장식 같은 것들은 도구 이전에 사용되었고, 언어 이전에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인류 초기 유적에서는 무기보다 먼저 장식품이 출토된 경우도 많다. 오스트리아에서 발견된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와 같은 구석기 시대 조각상은 생존 도구는 아니었지만, 출산과 생명력을 상징하며 종교적 혹은 제의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 여겨진다.

그중에서도 머리에 얹는 행위는 이러한 표현 중 가장 집약적인 행위였다. 누구나 볼 수 있는 자리, 몸의 가장 꼭대기에 존재하는 그 공간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신성을 흉내 내고, 권위를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금이 아니라도 괜찮았다. 깃털도, 가죽도, 조개껍데기도 머리에 얹는 순간 특별해졌다. 북미의 원주민들은 사슴의 뿔을, 파푸아뉴기니의 부족들은 새의 깃털을 머리에 올렸다. 아프리카의 마사이족은 의례 때마다 정교한 머리 장식을 사용하며, 남아메리카의 잉카 제사장들은 태양 모양의 머리띠를 착용했다. 이들은 서로 알지 못했고, 교류도 없었지만, 공통적으로 머리를 신성과 권위의 자리로 여겼다.

머리에 무언가를 얹는다는 행위는 단지 ‘꾸미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곧

“나는 너희와 다르다”,

“나는 신에 가깝다”,

“나는 너희를 이끌 자다”

라는 선언이었다. 이 선언은 언어가 없던 시대에도 시각적으로 전달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었다. 인간은 단순히 신을 믿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신처럼 보이고 싶어했다. 인간은 스스로를 신의 형상으로 만들고자 했고, 그 욕망은 머리 위의 상징으로 구체화되었다.

생존은 삶을 유지하기 위한 조건이었고, 상징은 그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이었다.

인간은 언제부터 신을 믿었는가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언제부터 신처럼 보이고자 했는가일지 모른다.

불을 머리에 올리기 전, 인간은 이미 그 불을 상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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