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이집트, 금을 발견하다
금은 땅속에서 발견되었지만, 고대 이집트에서 처음으로 하늘의 상징이 되었다.
그들에게 금은 단순한 금속이 아니었다.
녹슬지 않고, 썩지 않으며, 햇빛처럼 빛나는 그것은 태양신 라(Ra)의 살결이며, 신의 물질이었다.
금은 어떻게 신이 되었는가
이집트는 세계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금을 채굴하고 가공한 문명 중 하나다. 나일강 주변에는 천연 금맥이 풍부했고, 이들은 이미 기원전 3천년대부터 금을 제련하고 얇게 펴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점은 그들이 금을 무기로도, 화폐로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집트에서 금은 거의 오직 장례, 의례, 왕실 장식에만 쓰였다.
그들은 금을 “태양이 굳은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파라오는 신의 현신이라는 자신의 지위를 시각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금으로 만든 가면, 머리 장식, 보관(寶冠)을 착용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투탕카멘의 황금 가면이다.
투탕카멘의 가면: 죽은 왕이 아니라 신의 얼굴
기원전 14세기, 투탕카멘은 젊은 나이에 죽었다.
그의 무덤은 수천 년이 지나도록 거의 손상되지 않은 채로 발견되었고, 그 안에 있던 황금 가면은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그 가면은 단순한 사후 장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신화 속 태양신의 형상이자, 왕이 죽음 이후에도 신으로 존재함을 증명하는 시각적 선언이었다.
머리에 얹어진 그 금빛 얼굴은 “나는 인간이 아니다, 나는 신이다”라는 침묵 속의 외침이었다.
왕권과 금의 결합
이집트에서 금은 항상 권위와 신성, 영원성을 동시에 상징했다.
파라오가 쓰는 왕관도 금으로 장식되었고, 때론 순금으로 만들어졌다.
흰 왕관, 붉은 왕관, 이중왕관 모두 그 형태와 색에 따라 의미가 있었으며, 그 재질에 따라 격이 달라졌다.
이러한 전통은 훗날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아프리카, 인도 등 다른 지역에서도 금을 권위의 상징으로 채택하게 만든 기원이 되었다.
이집트는 ‘왕이 금을 쓰는 문화’의 가장 오래된 확실한 물적 증거를 남긴 문명이었고,
그 영향력은 직접적인 교류 없이도 형태적 모방과 상징의 동화를 통해 확산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금은 선택받은 재료였다
우리는 물질을 그저 도구로 보지만, 이집트인들은 금을 정서적 언어로 사용했다.
그들에게 금은 신의 피였고, 하늘의 일부였으며,
그것을 머리에 올리는 행위는 곧 하늘과 자신을 연결시키는 행위였다.
이후 수천 년 동안, 인간은 다양한 문화권에서 왕관을 만들어 올렸지만,
‘왜 금이었는가’라는 질문에 이집트만큼 명확한 답을 남긴 문명은 드물다.
그들에게 금관은 단지 아름다움이나 과시가 아닌,
신성한 정체성의 물리적 구현이었다.
왕은 금을 쓰지 않았다.
신이 썼고, 왕은 그 신을 따라한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