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nding, UI Design history / 2025-05-27 / by 천진우

불을 머리에 올린 인간: 신성을 쓰고 싶었던 인간의 욕망 - 5장

5장. 초원의 불꽃, 동쪽으로 흐르다

금관의 기원은 이집트에서 시작된 듯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대륙을 넘어 동쪽까지 퍼져나간 여정에는, 또 다른 주체가 존재했다. 바로 유라시아 초원을 질주한 유목민족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 동아시아는 유목민의 ‘영향’을 받은 것인가, 아니면 그 유목 세계의 ‘일부’였던 것인가?

유라시아를 연결한 스키타이의 상징

기원전 8세기경, 흑해 북쪽 초원지대에서 등장한 스키타이는 말 그대로 “황금의 민족”이었다.

그들은 금을 사랑했고, 금으로 신과 권위, 전쟁과 죽음을 모두 표현했다.

스키타이 고분에서 출토된 금제 장신구들은 말의 굴레, 인간 얼굴, 사슴의 뿔, 불꽃과도 같은 형상을 하고 있으며, 이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토템적 상징이자 사회적 위계의 표식이었다.

특히 스키타이 금관은 중앙 장식이 하늘로 솟은 듯한 구조를 지니며, 이는 신성한 기운이 위에서 내려오는 통로를 시각화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금관의 형식은 나중에 한반도 남부, 특히 신라의 금관과 놀라울 만큼 유사한 형태로 다시 나타난다.

동쪽으로 흐른 상징: 한반도는 수용자가 아니었다

과거의 한국 고대사 해석은 종종 중국의 영향, 북방 유목민의 영향이라는 ‘수동적 서사’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최근 고고학, 유전학, 비교문화 연구들은 한반도의 고대 문화가 오히려 유라시아 초원 세계의 일부였다는 관점을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신라 금관은 그 구조에서 북방 유목민족의 금관과 뚜렷한 친연성을 가진다.

나뭇가지처럼 솟은 장식, 사슴의 뿔을 닮은 실루엣, 관을 고정하는 금제 테두리, 금판을 이어붙인 정교한 제작 방식 — 이 모든 요소는 중앙아시아 스텝 지대에서 발견된 유목민계 금관들과 유사하다.

하지만 단순한 ‘모방’이 아니다. 신라 금관은 옥 장식, 고유의 반달형 장식, 지역 금세공 기법을 결합하며, 새로운 형태로 정착했다.

즉, 이들은 자신들의 문화 안에서 금관을 ‘재해석’한 유목 세계의 구성원이었던 것이다.

유목과 정착의 경계에서 피어난 상징

한반도의 고대 국가는 단지 유목민족의 영향을 받은 정착민이 아니었다.

그들은 유목과 정착의 경계에서, 이동성과 고정성을 동시에 경험한 집단이었다.

고구려는 산악 지대에 정착했지만 기마 전술을 활용했고, 신라는 경주盆地에 고정되었지만 유목적 상징체계를 계승했다.

이처럼 한국 고대 국가는 토착과 유목의 혼성 구조를 가진 사회였다.

그 증거는 단지 금관에만 있지 않다.

말갛게 윤이 난 철기, 기마 무사들의 묘제, 사슴과 불꽃을 형상화한 벽화, 그리고 하늘과 연결되는 머리 장식.

이 모든 요소는 한반도가 유라시아 세계에 ‘편입’되었다기보다는, 그 일부였음을 시사한다.

초원의 불은 동쪽에서도 탔다

우리는 더 이상 동아시아를 유라시아 문화의 수신지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불을 머리에 올린 인간은, 초원에서만 등장한 것이 아니다.

동쪽 끝 한반도에서도, 사람들은 하늘을 바라보며 금으로 머리를 장식했고, 그것을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과 신성을 선언했다.

그 불은 유라시아를 가로지르는 바람을 타고, 스텝 벨트를 지나 동쪽의 산과 평야로 흘러들었고,

그곳에서 또 다른 불꽃으로 피어올랐다 —

금으로, 왕의 머리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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